전문가 칼럼
실리콘밸리의 VC는 왜 AI에만 돈을 쓸까 [실리콘밸리의 사람들]
- 몇몇 대형 스타트업에 수천억원 규모 투자 집중
"AI는 단순한 혁신이 아니다. AI는 세상을 다시 설계하는 기술"

[최성안 2080벤처스 대표] 2024년 글로벌 벤처투자 중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이 차지한 비중은 약 33%, 투자액은 1100억 달러(약 150조원)에 달했다. 특히 2025년 1분기에는 미국 벤처캐피탈(VC) 전체 투자 중 최대 77%가 AI에 몰렸다. 오픈AI·앤스로픽·엑스AI 등 몇몇 대형 플레이어에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이런 ‘몰빵’ 투자는 역사상 유례없는 현상이다. 닷컴 버블 당시에도 인터넷 기업 투자 비중이 전체의 40%를 넘지 않았는데, AI는 그 두 배에 가까운 집중도를 보인다. 심지어 전통적 강세 분야였던 바이오테크, 핀테크, 이커머스 투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왜 VC들은 AI에 열광하는가?
첫째, AI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생성형 AI는 ▲콘텐츠 제작 ▲법률 분석 ▲의료 영상 판독 ▲산업 설비 유지보수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방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나의 모델로 여러 시장을 목표로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 VC는 단일 투자로 다수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멀티레버리지 구조'를 가장 선호한다.
둘째, AI는 전통 스타트업과는 다른 자본 구조를 요구한다. 기초 AI 모델은 수천억 원 규모의 GPU 클러스터와 데이터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AI 생태계는 VC 주도형 '대형 R&D 프로젝트'로 진화하고 있다.
셋째, AI는 플랫폼 구조다. 초기 우위를 점한 기업은 ▲데이터 축적 ▲생태계 확장 ▲네트워크 효과로 후발주자를 압도한다. 이는 인터넷 1세대 플랫폼과 유사한 특징이며, VC는 장기적 독점력을 기대하며 베팅한다.
넷째, AI는 '규모의 경제'가 극명하다. 큰 모델일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다. 따라서 초기 막대한 투자가 가능한 기업만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이는 VC에게 '올인 아니면 아웃' 구조를 만든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 에이전트형 AI, 즉 사람이 직접 명령하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업무 수행이 가능한 AI가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오픈AI의 오토GPT ▲앤스로픽의 클로드 ▲구글 딥마인드의 제미나이 등이 대표적이다. ▲백오피스 자동화 ▲법률 문서 정리 ▲코드 생성 등에서 실질적인 매출 구조를 만들고 있다.
또 바이오·기후·국방 산업에 특화된 AI는 유망하다. 예컨대 AI 기반 ▲신약 개발 ▲탄소 포집 예측 ▲위성 운용 시스템은 장기 투자에 적합하며, 대형 VC가 선호하는 구조는 여기에 있다.
한편, 팔란티어(Palantir)는 실리콘밸리 VC들이 AI에 집중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미국 국방부와 연방기관 중심의 ‘고담’(Gotham), 기업용 플랫폼 ‘파운드리’(Foundry), 2023년 출시된 생성형 AI 플랫폼 'AIP'를 통해 상업용 판로를 개척했다. 2025년 1분기 팔란티어는 방위 산업 관련 매출이 40%, 상업용 매출이 31% 증가하며 성과를 입증했다.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팔란티어는 경량화된 'Forward Deployed Engineer'(FDE) 모델을 통해 고객사와 현장 맞춤형 협업을 이뤘다. 이는 AI 솔루션을 산업 현장으로 빠르게 전파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이 사례는 몇 가지 실리콘밸리 특유의 원칙을 보여준다. ▲기술 중심 플랫폼 ▲인프라 기반 확장 ▲현장 중심 실험, 즉 창업자와 엔지니어가 함께 세계 현장에 뛰어드는 방식이다.

한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은 아직 '패스트 팔로워' 수준이다. 이재명 정부는 '100조원 규모의 민관 공동 투자를 통해 미국, 중국에 이은 AI 3강이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웠고,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려를 표한다. "AI 3강이 되려면 경쟁력 있는 프론티어 모델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고 인프라 구축이 선결과제"라는 지적처럼, 실행력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펀드 또한 내수 중심의 시드 투자에 집중되어 있고, 글로벌 VC와의 연결 구조는 약한 편이다.
한국 AI 투자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조8000억 원으로, 미국의 80분의 1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투자 방식의 차이다. 미국은 몇 개 기업에 수천억 원씩 몰아주는 '메가 라운드' 구조인 반면, 한국은 수십 개 기업에 수십억 원씩 나눠주는 '소액 분산' 구조다. 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결정적 약점이 된다.
이 와중에 실리콘밸리로 이전한 몇몇 한국 스타트업들은 흥미로운 사례다. 퓨리오사AI는 미국 VC 투자와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보했고, 메타로부터 약 8억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사례인 업스테이지는 오픈AI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형 LLM(대규모 언어모델) 개발로 주목받고 있으며, 미국 진출 이후 더 많은 고객을 확보 중이다. 이들은 'AI 기술력 + 실리콘밸리 자본 네트워크'의 조합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우수한 AI 인재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국내 생태계는 공동화(空洞化)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카이스트, 서울대 등 국내 최고 연구진들이 구글· 오픈AI·앤스로픽 등으로 이동하는 '브레인 드레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에서 키운 인재가 해외에서 꽃피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반면, 국내 시장은 이미지 생성 앱, 학습 요약 서비스, 챗봇 등 단기 수익형 AI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장기 플랫폼 성장보다는 '빠른 다운로드 수'를 목표로 하는 구조로, 글로벌 생태계와는 결이 다르다.
이제 한국은 단순히 빠르게 따라가는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공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첫째, GPU·클라우드 같은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정부·대기업·투자사·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하여 ▲생성형 AI ▲의료 AI ▲국방 AI처럼 신속한 실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팔란티어처럼 현장 밀착형 엔지니어(FDE) 모델을 도입해 정부·대기업·스타트업이 협업하는 'AI 플랫폼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전략적 집중'이다. AI는 범용 기술이지만, 모든 분야에 분산 투자하면 아무 분야도 못 잡는다. 한국은 ▲국방 ▲스마트 카 ▲헬스케어 ▲기후 테크 등 전략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팔란티어가 그랬던 것처럼, 방위·국방 AI에서 선제적 시장 진입을 노릴 수 있다. K-바이오· 조선해양·반도체 등 기존 강점 산업과 AI를 결합한 '버티컬 AI' 전략이 현실적이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말했다. "AI는 단순한 혁신이 아니다. AI는 세상을 다시 설계하는 기술이다."
VC들이 AI에만 돈을 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지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 기술이 세상의 구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나아갈 길은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다. 지금은 플랫폼 설계자로 변신할 때다. 시간은 많지 않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톱 액셀러레이터·VC 2080벤처스의 공동대표다. 글로벌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연결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문가이며 '실패하는 Vs 성공하는 기업'의 공동저자다. 실리콘밸리·일본·사우디아라빙 등에서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M&A ▲글로벌 진출 전략을 지원하고 있으며, SpaceX 등의 투자자로도 활동 중이다. 해외 스타트업 두 곳에서 실무를 맡아 성공적인 엑시트를 이끌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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