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최근 추락한 해군 P-3CK 해상 초계기를 포함해 한국 해군이 운용 중인 동일 기종 항공기 8대 모두 미국에서 퇴역한 항공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항공기는 우리나라 해군 도입 전, 전량 미 공군 제309 항공우주 정비·재생단(309 AMARG)에 보관돼 있었다.30일 본지가 입수한 ‘2024 록히드 마틴 P-3 오라이언 기체 이력·위치 보고서’(2024 Lockheed Martin P-3 Orion Aircraft Location Report·ALR)에 따르면, 한국 해군이 운용하는 P-3CK 항공기 8대는 모두 미국 해군에서 사용하던 P-3B 기체를 퇴역 후 도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P-3CK는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P-3 오라이언 시리즈 가운데 B형 기체를 기반으로 한 파생 모델이다. 현재 한국 해군이 보유한 P-3CK 8기는 모두 1960년대 중반 미 해군에 처음 인도된 P-3B 기체다. 모두 생산된 지 약 60년이 넘은 고령 항공기인 셈이다.ALR은 전 세계 P-3 오라이언 기체의 생산·운용·퇴역·폐기·보존 현황 등을 정리한 항공기 이력 추적 보고서다. 보고서를 작성한 주체는 네덜란드 기반 민간 항공기 이력 추적 단체인 ‘P-3 연구 그룹’(P-3 Orion Research Group)이다. 단일 기종(P-3 Orion)만 수십 년간 추적·기록한 전문가 그룹으로 통한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해군 P-3CK 전량은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에 위치한 미 공군 제309 항공우주 정비·재생단(309 AMARG)에 장기 보관되던 퇴역 항공기였다. 309 AMARG은 ‘항공기 무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수천 대의 퇴역 군용 항공기(전투기, 수송기, 초계기 등)가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군 8개 기체의 이력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기체번호 090910은 1966년 1월 3일 미 해군에 인도됐으며, 퇴역 후 AMARG에 등록번호 AN2P0069로 보관됐다. ▲090911은 1966년 1월 17일 인도된 기체로, AMARG 등록번호는 AN2P0063이다. ▲090912는 1966년 1월 24일 인도됐고, AMARG에서는 AN2P0099라는 번호로 장기 보관됐다.계속해서 ▲090913의 인도일은 1966년 2월 4일이며, AMARG 등록번호는 AN2P0091이다. ▲090915는 1966년 9월 13일 미 해군에 인도됐으며, AMARG 등록번호는 AN2P0084로 확인된다. ▲090916은 1966년 11월 21일 인도된 기체로, AMARG에서의 번호는 AN2P0071이다. ▲100917은 1967년 1월 17일 인도됐으며, AMARG 등록번호는 AN2P0046이다. ▲100918은 1967년 3월 10일 인도됐으며, AMARG에서 AN2P0114라는 번호로 관리됐다.
현재 8기 기체 모두는 ‘대한민국 해군’(Republic of Korea Navy·RoKN) 소속으로 기재돼있다. 운용 부대도 한국 해군의 제61항공대(61AG)로 명시돼 있다. 기종 구분란에는 'P-3CK'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한국 해군이 개조한 항공기에만 적용되는 형식명이다.
P-3CK 사업은 해군이 대잠초계기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중고기 개조 프로젝트였다. 당시 방위사업청은 미국으로부터 퇴역한 P-3B 8대를 구매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개량 작업을 벌였다. 이후 개조를 마친 기체는 P-3CK라는 명칭으로 실전 배치됐다.
전문가들은 당장은 사고 원인을 진단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오래된 기종이더라도 오버홀(완전분해수리)을 통해 기체를 신품 수준으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기체 노후화가 추락 원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초계기의 경우 보통 오래된 기종을 복원해서 사용한다”며 “해당 기체의 경우 완전 오버홀을 통해 신품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기에, 기체 노후화가 추락 원인이라 단정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행기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정비로 다시 젊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 공군 제309 항공우주 정비·재생단이 항공기 무덤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사실상 보관소에 가깝다”며 “해당 항공기의 추락 원인은 복합적이어서, 당장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조사결과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도 “해당 초계기가 오버홀을 통해 성능 개량을 했다고 해도, 일정 부분 한계는 있었을 것”이라며 “60년된 항공기는 노후화된 기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울러 사막에 위치한 항공기 무덤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으니 기체에 일정 부분 피로도가 누적돼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단순히 이 모든 사고 원인이 노후화로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과도한 작전 운영과 훈련 수요, 2차 창정비 시기 도래 등 초계기의 추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가장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선 조금 더 조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