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시드 다음이 없다”…끊긴 자금줄에 멈춘 스타트업 성장엔진
- [韓 스타트업 생존전략]①
시리즈 A도 못 넘긴다…확장 대신 ‘버티기’에 나선 스타트업
펀드 결성 위축·IPO 철회 급증…끊어진 자금 선순환 고리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벤처 생태계의 ‘자금 순환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 자금 조달 환경이 전방위로 경색되면서 초기 창업기업은 시작조차 어려워졌고, 성장 단계에 접어든 스타트업은 후속 라운드를 넘기지 못한 채 멈춰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공개(IPO) 등 회수 수단도 막히면서, 시장 전체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집행액은 총 11조9457억원으로, 전년(10조9133억원) 대비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투자금의 절반 이상인 6조3663억원(53.3%)이 창업 7년 이상 된 후기 기업에 집중됐다.
창업 3년 이내 초기 기업에 흘러간 자금은 2조2243억원(18.6%)에 그쳤다. 자금이 검증된 기업에만 쏠리면서, 창업 초기에 진입한 기업들이 사실상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구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금 흐름이 끊기자 시장 전반에서는 위축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시드투자 이후 시리즈 A·B 구간에서 자금 유입이 급감하며, 검증을 마친 스타트업조차 확장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한동안 유지되던 인력을 줄이거나 사업 속도를 늦추는 선택을 하는 곳이 늘고 있다.
검증된 기업만 살아남는 자금조달시장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시드부터 초·중기투자까지 전반적으로 투자가 얼어붙은 상황”이라며 “특히 시리즈 B 이후 라운드에서의 자금 조달은 거의 멈춰 있다”고 토로했다. 또 “외부 자금이 막히다 보니 적은 매출 흐름으로 버티는 기업이 많고, 때문에 내부 리소스를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시간을 끄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창업기업의 생존율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창업 후 5년차 생존율은 34.7%에 불과했다. 신생기업의 3곳 중 2곳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장한 셈이다. 이후 생존율은 더욱 떨어진다. 6년차 생존율은 31.0%, 7년차는 27.8%로 나타났다.
한편 벤처캐피탈(VC)들도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고금리와 글로벌 불확실성 탓에 미집행 투자금(드라이파우더)이 쌓여 있음에도 실제 투자 집행은 정체된 상태다. 일부 운용사는 기존 포트폴리오의 수익성 점검에 집중하며 신규 투자에는 사실상 ‘관망 모드’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회수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며 “기술력이나 확장성보다 유동성과 수익 안정성이 우선시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모험자본 본연의 성격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올 정도”라고 덧붙였다.
회수도 조달도 다 막혔다…벤처펀드 결성 급감
자금을 회수할 출구가 막힌 점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높아진 상장 심사 분위기 속에 지난해 IPO 철회 기업 수는 30곳 이상에 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예비 유니콘 상당수는 상장 계획을 보류한 채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여기에 매크로 환경의 악화로 공모 흥행을 자신할 수 없는 시장이 되면서, 회수 전략 자체가 장기 지연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벤처펀드 결성 자체가 크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자금 순환의 첫 단추부터 막히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이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신규 벤처펀드 결성액은 10조5550억원으로, 2020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21년 17조8481억원을 정점으로 2022년 17조6401억원, 2023년 13조328억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는 전년보다 다시 19% 줄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민간 자본의 이탈이 뚜렷하다. 2024년 민간 출자액은 8조1324억원으로, 2년 전(2022년, 14조4450억원)보다 6조원 이상 줄었다. 개인 출자자의 참여 비중도 2021년 16%에서 올해 10% 수준으로 하락했다. 대기업 중심 출자를 제외하면 기관투자자(LP) 자금 유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분석이 많다.
정책 자금 비중은 상대적으로 늘었다. 정부는 모태펀드 예산 1조원을 조기 집행하고, 창업초기·지방 등 정책중점 분야 중심으로 출자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2024년 신규 결성된 벤처펀드 중 공공부문 출자 비중은 23%로, 전년(16.7%) 대비 6.3%포인트(p) 늘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전체결성 규모가 줄어든 상황에서 정책 자금만으로 시장을 떠받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시장에서는 일시적인 자금 공급보다 스타트업의 성장과 회수가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 자체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창업 이후 일정 단계 이상 진입한 기업에 대한 ▲연속적 자금 지원 ▲모태펀드의 회수 기간 다양화 ▲상장 심사의 유연화 등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업계에서는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창업이 아니라, 창업 이후 버틸 수 있는 환경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성장 가능성을 입증해도 후속 자금이 끊기고, 회수 수단도 제한적인 구조에서는 기업 스스로의 생존만이 유일한 전략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자금 유입과 회수의 경로가 함께 막힌 지금, 스타트업 생태계가 다시 순환 구조를 회복하기 위해선 구조적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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