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세계 시장 진출 시작했던 ‘車 삼국지’…현대·대우·쌍용의 다른 길
- [1984 신진 뛰어넘은 모빌리티 한국] ①
기술 독립으로 생존한 현대차
성공 신화 재현 나서는 쌍용차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1984년, [이코노미스트]가 태어난 해이지만 한국에서 한때 재계 5위 안에 들었던 신진그룹이 부도로 사라진 해이기도 하다. 한국 자동차 역사를 쓴 주인공인 신진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 시장 진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현 한국GM),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는 각기 다른 전략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했다. 이들의 성공과 실패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때 이들이 세계 시장을 향해 던진 ‘승부수’는 지금의 한국 자동차 산업에 여전히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기술 자립 ‘뚝심’ 현대차
현대차는 1990년대 초반부터 ‘기술 독립’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일본차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고, 미국·유럽 브랜드들은 여전히 품질과 브랜드 파워에서 한국차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에 현대차는 자체 플랫폼과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중요한 성과는 1988년 출시된 2세대 ‘쏘나타’였다. 이전까지는 일본 미쓰비시의 엔진과 변속기 기술을 도입해 생산했지만, 2세대 쏘나타는 전륜구동 플랫폼과 차체 설계, 디자인에서 현대차의 독자 개발 역량을 크게 강화하며 글로벌 완성차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됐다.
다만 엔진과 변속기 등 핵심 파워트레인 부품은 여전히 미쓰비시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현대차가 엔진과 변속기까지 완전히 독자 개발한 첫 모델은 1998년 출시된 EF 쏘나타다. 이때부터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로서 기술 독립을 본격적으로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가 첫 번째 글로벌 승부처로 택한 시장은 미국이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일본차가 성공 신화를 쓴 곳이기도 했다. 1988년부터 쏘나타를 미국 시장에 수출하며 현대차는 본격적인 글로벌 도전에 나섰다.
2세대 쏘나타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수출 전략형 중형차로 개발됐는데, 실제로 1988년 11월 미국에 수출되며 중형 세단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다만, 당시 일본차의 강세로 인해 쏘나타가 뚜렷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전환점은 1998년 등장한 EF 쏘나타였다. EF 쏘나타는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V6 델타 엔진과 자체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첫 양산 모델로, 기술 독립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추후 등장한 EF 쏘나타는 품질과 신뢰를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품질 경영 혁신에 사활을 걸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출신 품질 전문가를 영입하고, 생산 전 과정을 ‘글로벌 품질 기준’에 맞춰 개혁했다. 이와 함께 디자인 경영을 내세워 유럽 시장을 겨냥한 ‘유럽형 모델’을 속속 선보였다.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도 병행했다. 2005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체코, 터키, 인도, 중국, 브라질 등 주요 전략 시장에 현지 공장을 세우며 ‘현지 생산-현지 판매’ 체제를 완성했다. 이는 수입차가 아닌 현지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도전과 혁신의 결과, 현대차는 글로벌 5위 완성차 그룹으로 도약했다.

역사가 된 대우차, 미래 꿈꾸는 쌍용차
대우자동차는 1990년대 외형 확장에 나섰다. 당시 자동차 완성 기술력은 부족했지만, 빠르게 몸집을 키워 세계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선택한 방식이 ‘글로벌 인수합병’(M&A)이었다.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전자·조선·기계 등 대우 전 계열사의 해외 진출을 지휘했고, 그 중심에 대우자동차가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대우차는 1995년 폴란드 FSO 인수를 시작으로 루마니아 다치아, 우즈베키스탄 우즈대우, 인도 대우마토즈 생산법인을 잇따라 설립하거나 인수하며 유럽-아시아 생산벨트를 구축했다.
이때 대우차가 주력한 전략은 소형차였다. 한국에서는 '르망', '에스페로', '누비라', '라노스'를, 해외에서는 '마토즈' 등 당시 전 세계에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던 저가형 소형차 시장을 공략했다. 신흥국에서는 값싼 가격과 단순한 구조의 차량이 먹히며 판매량을 늘렸다. 하지만 대우차는 빠른 확장에 비해 품질 관리와 조직 통제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다.
아울러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누적된 부채가 20조 원을 넘어섰고,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했다. 김우중 회장은 해외 사업 확장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룹 해체는 불가피했다. 자동차 부문도 결국 파산 절차에 들어갔고, 2002년 대우차는 미국 GM에 인수됐다.
쌍용자동차는 1990년대 경쟁사와 달리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전문 브랜드’라는 독자 노선을 택했다. 1993년 ‘무쏘’, 1996년 ‘코란도’, 2001년 ‘렉스턴’을 선보이며 국내 완성차 업계 최초로 SUV 중심의 라인업을 구축했다. 해당 전략은 당시에 다소 모험적이었지만, SUV 시장이 본격 성장하기 이전 니치마켓 선점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정된 내수 기반과 글로벌 네트워크 부족은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1997년 대우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며 대형화의 기회를 얻는 듯했지만, 대우그룹 해체로 다시 독립 경영 체제로 돌아섰다. 이후 상하이차(중국), 마힌드라(인도), KG그룹(한국) 등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는 부침을 겪었다.
세부적으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차가 경영권을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 확장의 기회를 얻는 듯했지만, 상하이차가 핵심 기술만 빼가고 철수했다는 논란 속에 201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2011년 인도 마힌드라 그룹이 새 주인이 됐지만,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 확보나 전동화 전환에 실패하며 또다시 경영 위기를 맞았다.
시간이 흘러 2022년 KG그룹이 인수하며 ‘KG모빌리티’로 사명을 바꾸고 재기를 선언했다. 현재 KG모빌리티는 SUV 라인업 전동화, 해외 신흥시장 개척, 배터리·전기차 부품 내재화 등을 내세워 과거 SUV 성공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일본 여행 가려면 사전심사를?…일본판 ‘ESTA’ 뭐길래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일간스포츠
이데일리
이데일리
아이린, 깜짝 결혼 발표…예비신랑 정체는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이재명은 아냐, 국힘도 별로'…고민 빠진 강남 보수표심[르포]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코스닥 상장사 디모아, 자회사 디씨온 클러쉬에 매각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단독]지투지바이오, 특허무효심판 피소…상장 영향은?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